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매출액 1조원의 지방소재 제조업체에서 30여년을 근무한 송모(58) 기장. 자동차 에어컨 부품 생산공장에서 조장, 직장, 기장으로 현장부서 책임자를 두루 거쳤다. 젊은 시절에는 회사를 다니며 전문대 에너지설비 관련 졸업장을 땄다. 같은 회사에서 생산과장으로 퇴직한 서모(54) 차장. 공고를 나와 국내 굴지의 중공업회사에 입사해 용접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계열사로 이동해 차량용 에어컨 생산현장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다. 서 차장도 주경야독을 통해 대학졸업장을 받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산업 현장의 베테랑이며 기능장 등 다수의 기술자격증을 보유했다는 점이다. 송 기장은 보일러와 고압가스 기능장, 서 차장은 용접기능장, 열기계, 배관, 고압가스 자격증에 용접분야 직업훈련교사 2급 면허까지 갖고 있었다.

중소기업, 열악한 취업 현실

두 사람 모두 연봉 등 눈높이만 조금 낮추면 어디든 들어갈 곳이 없겠느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취업현실 앞에서 암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대기업에 비해 중소업체는 노동 강도는 세고, 급여와 복지 수준은 현저히 낮았다. 채용사이트 워크넷 채용공고를 찾아보면 시간당 최저임금 5580원에 명절 상여금을 지급하는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주야간 2교대, 토요일까지 근무시간도 빡빡했다. 주 5일제에 익숙해진 탓도 있지만, 나이 들어 쉬엄쉬엄 일할 생각을 했는데, ‘괜히 나왔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또, 지역에서 큰 회사에 다녔다는 자존심 때문인지 거래했던 중소 하청업체엔 일하고픈 마음조차 없었다.

경력 살린 제2의 직업 찾기

서 차장은 부인과 함께 중국여행도 다녀오고, 여유시간을 보내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직 대학에 다니는 막내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퇴직 후 석 달이 지나자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 차장은 자신의 경력과 기능장, 직업훈련교사 자격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 중에 직업능력개발 훈련교사가 있었다. 서 차장이 용접강사 모집공고가 난 학원을 찾아가 자세히 알아봤다. 최근 중장년들이 새롭게 기술을 배워 재취업하려는 수요가 많아 용접 등 기술학원 전망은 밝은 편이었다. 직업훈련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직종 기업체 실무경력과 이론 설명 능력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가르치는 일을 배워야 한다. 가능하면, 보조강사로 일하면서 교육 운영 노하우를 습득해야 한다. 교안 준비부터 강의 스킬 연마를 위해서는 수개월이 소요된다. 또 하나, 직업훈련강사는 생각보다 직무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다. 강의 외에도 정부평가 및 심사, 훈련성과관리, 학급 및 훈련생 관리, 진로 및 취업지도 등 업무량도 많다. 더구나 그는 이론적인 부분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학습이 필요했다. 서 차장은 좀 더 신중히 검토하고 진로를 결정하기로 했다.

취미경력 결합된 일자리 찾기

퇴직 후 매일 스크린 골프장에 다닌 송 기장. 만날 때마다 “당장 취업할 생각이 없다. 30년 동안 일했는데 좀 쉬어도 되지 않겠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느 날 모회사의 모집공고를 보자 눈빛이 달라졌다. 제조공장이 아닌 골프장의 보일러, 가스 등 시설관리 업무였다. 일도 하고, 시간이 되면 짬짬이 푸른 그린에서 퍼팅하는 상상에 저절로 미소가 돌았다. 골프장이나 스포츠단지의 보일러‧냉난방 시설관리직 취업처를 알아봤다. 서툰 솜씨지만 정성껏 작성한 이력서를 채용담당자에게 메일로 보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기대가 높았던 만큼 낙심한 표정이 가득했다. 송 기장은 인터넷을 통해서만 구직활동을 진행했다. 채용회사에 전화로 이력서 조회 여부도 확인하고, 직접 회사를 찾아가 자신을 어필하는 적극적인 행동이 전혀 없었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는 이유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현장 경력과 기능장 자격증도 ‘나이’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할 수 있다. 공부하고 발로 뛰는 ‘열정’과 ‘노력’으로 보석을 꿰어야 한다. 가만히 있는 ‘나’를 부르는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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