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파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퇴 이후 일자리와 소득 단절에서 오는 위기다. 지자체들이 폐지수거 어르신들에게 손수레를 만들어 전달하고 '자랑'하는 지경이다. 복지국가는 아직 멀기만 하다. 경기 고양시가 폐지를 모아 생활하는 어르신들에게 손수레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고양시

[시니어신문=이길상 기자] 지난해 파산을 신청한 노인 수가 2017년 3월 서울회생법원 출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13일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파산을 신청한 60대 이상 고령자는 2715명에 달했다. 법원이 파산신청자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8년 이후 가장 많다. 60세 이상 파산신청자는 2018년 2058명, 2019년 2373명, 작년 2715명으로 2년 만에 32%나 급증했다. 빈곤과 질병, 고립의 늪에 빠진 고령층이 코로나19 여파로 가속화한 경기 하강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노인 파산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전체 파산신청자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체 파산신청자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35.5%에서 작년에는 39.8%로 4.3%포인트나 높아졌다. 지난해 파산을 신청한 사람 10명 중 4명이 노인인 셈이다.

노인 파산이 특히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유는 고령층이 실물경제 둔화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는 취약한 고리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60세를 전후로 은퇴하면서 수입이 급감하지만 지출은 증가한다. 고령의 부모 요양비나 의료비, 자녀 결혼식 비용, 본인 의료비 등 목돈을 지출할 일이 많다.

반면, 은퇴 후 고령자들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수입이나 고용안정성 측면에서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식당 주방보조, 청소, 건물 관리 등 단순노무직이 주를 이룬다. 경제 위기가 닥치면 가장 빠르게 사라지는 일자리다.

노인빈곤율, 여전히 OECD 1위…대책 마련 시급

노인빈곤율은 여전히 OECD 회원국 1위를 차지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월 13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3.4%로 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는 OECD 평균 14.8%보다 3배나 높은 수치다. 미국(23.1%), 일본(19.6%), 영국(14.9%), 독일(10.2%), 프랑스(4.1%)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다.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이 혼자 살아도 식료품비, 의료비, 통신비 등 1개월 생활비로 129만3000원이 필요다. 하지만, 은퇴를 앞둔 51~60세 국민연금 가입자 중 월 130만원 이상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8.4%에 불과하다. 100명 중 8명만 노후 준비가 돼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연평균 4.4% 증가했다”며, “최근 10년간 노년층이 해마다 29만명씩 늘어났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는 OECD 평균 2.6%의 1.7배나 된다.

현재 우리나라 고령인구 비율은 15.7%로 OECD 37개국 중 29위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20년 후인 2041년에는 33.4%로 인구 3명 중 1명은 노인이 된다.

일본, ‘노후파산(老後破産)’ 큰 이슈 떠올라

일본에서는 이미 ‘노후파산(老後破産)’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NHK는 ‘노인들이 표류하는 사회’라는 제목으로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심각한 사회 문제를 다뤘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바람에 수십 년간 성실하게 일했던 중산층이 노후에 갑자기 빈곤계층으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이른바 ‘노후파산’의 실체를 파악했다. NHK 방송 이후 빈곤층이 된 노인을 일컬어 ‘하류(下流) 노인’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NHK에 따르면, 방송에 따르면 일본에서 홀몸 노인은 600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3분의 1인 200여만명이 겨우 입에 풀칠하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수준의 ‘노후파산’을 감내하고 있다.

젊어서 성실하게 잘 살아온 평범한 일본인들이 노후파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일반 직장인이 60세 전후 은퇴해 90세 이상 산다면 별도 수입 없이 모아 놓은 돈으로 살아가야 할 세월이 30여년이다.

일본 후생성이 2016년 1월 발표한 후생연금(국민연금과 유사한 소득비례 연금) 자료에 따르면, 아내가 전업주부인 직장인 은퇴자의 경우 월평균 수령액은 22만엔(약 228만원)이다. 일본 은퇴 전문가는 부부가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면 월 12만(약 124만원)~13만엔(약 134만원), 다소 취미생활까지 즐기려면 25만(약 259만원)~26만엔(약 269만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연금 수입에만 의존해 월 26만엔을 쓴다면 1년에 48만엔(약 498만 원) 적자가 발생한다. 65세 은퇴 이후 100세까지 산다면 35년간 적자는 1680만엔(약 1억7,000만 원)에 이른다. 그나마 질병이 없으면 다행이다. 암이나 치매는 노후 자금을 무서운 속도로 바닥내는 주범이다. 치료비를 대다 ‘노후파산’을 당한 사례는 일본에서도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10년 이상 가입해도 월 54만원 수준

수명이 늘어나면서 국민연금을 받는 기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10년 이상 가입했어도 월평균 받는 액수는 54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국민연금공단 ‘2020 국민연금 지급 통계 현황’에 따르면, 실제로 20년 이상 가입한 노령연금 수급자는 연말 기준 전년 대비 25.2% 증가한 83만8000명으로 평균 연금액은 월 93만 원이다.

2015년에는 32만2498명에 불과했으나, 제도가 성숙해짐에 따라 5년 전 대비 약 2.6배 증가한 83만8099명까지 늘어났다. 전체 수급자 중 18.8%를 차지한다.

가입 기간 10년 이상인 전체 노령연금 수급자는 총 329만7000명, 평균 연금액은 월 54만1000원으로 나타났다. 30년 이상 가입자는 5만5000명으로 이들의 평균 연금액은 월 136만8000원으로 확인됐다.

부부 모두 노령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42만7467쌍(85만5000명)으로 2019년 35만5382쌍 대비 20.3% 증가했다. 하지만, 부부 합산 평균 연금액은 월 80만7000원에 불과하다. 부부 수급자 합산 최고액도 월 381만9000원에 그쳤다.

노인일자리사업, 과도한 물량확대로 질적 관리 어려워

노인일자리사업을 내실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손꼽힌다. 하지만, 정부가 1조3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붓는 ‘묻지마’식 노인일자리 확대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80만개에 달하는 노인일자리 대다수는 쓰레기수거나 교통 안내 등 월 최대 27만원을 받는 공공형 일자리사업이다.

숫자 늘리기에 급급하다보니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정보원조차 “과도한 물량 확대로 적절한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사업인원의 무분별한 확대로 인해 중도포기자나 불성실 참가자도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드렛일을 늘려 숫자만 부풀릴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노인들을 실제 고용현장으로 유입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정부도 지난 8월, 범정부 인구TF를 통해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맞춰 노인들의 고용시장 유입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시행된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이 대표적이다. 정년이 지난 고령자에 대해 고용을 유지할 경우 2년 동안 분기마다 최대 9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얼마나 큰 유인책이 될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