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은 치유농업 추진 이유를 3가지 제시했다. 정신질환 경험자 증가, 농업·농촌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 필요, 농업·농촌지역의 패러다임이 생산중심에서 가치산업 생태계 조성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요구다. 일러스트=농촌진흥청

[시니어신문=추미양 기자] 농업이 전통적인 먹거리 생산을 넘어 국민의 건강 회복·유지·증진을 위해 활용된다. 농촌진흥청은 심신을 치유하는데 농촌체험과 농업활동을 활용하는  ‘치유농업’을 본격적으로 기획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3월 25일 시행된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하 치유농업법)’이 원동력이 됐다.

원예치유에서 시작된 치유농업 효과

치유농업의 등장 배경에는 원예치유가 있다. 농촌진흥청은 1994년 꽃, 채소 등 원예작물의 치유 효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치유농업’ 개념을 정립하고, 치유농업의 건강 증진 효과를 계속 검증해왔다.

65세 이상 노인들이 주말농장에서 채소류 씨 뿌리기, 토마토 심기, 꽃밭 가꾸기, 허브차 만들기 등의 활동을 했다. 우울증 60%, 총콜레스테롤 5%, 체지방률 2%가 각각 감소했다. 치유농장 활동이 정신적, 신체적 건강 증진에 영향을 준 결과다. 치유농업이 학교 폭력 완화에도 도움을 줬다. 학교 내 텃밭 가꾸기 활동을 한 가해 학생의 폭력성이 4.3% 감소하고, 피해 학생의 우울감은 5.3% 줄었다. 고혈압, 당뇨 등 만성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 28.1% 감소, 나쁜 콜레스테롤(LDL) 9.2% 감소, 인슐린 분비 기능이 47% 증가했다.

치유농업 선두주자 네덜란드 ‘케어팜’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앞서가는 치유농업(Care Farming) 국가다. 1960년대에 들어서니, 생산량 위주의 전통적 농업은 더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농업, 농촌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변하기 시작했다. 농업이 주는 자연적 경관, 환경 보전, 휴식 등 사회적 요구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는 자연경관과 영농활동을 매개로 하는 치유농업에 관심이 모아졌다.

네덜란드 치유농업은 케어팜(Care Farm, 치유농장)을 기반으로 한다. 케어팜은 농업을 통한 다양한 활동과 돌봄 서비스를 결합한 것이다. 케어팜 이용자는 자폐 또는 발달장애 등 정신질환 환자, 치매 노인, 학교 부적응 청소년, 알콜 중독에서 탈피하려는 사람, 장기 실업자들이다. 즉 복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자체 복지과를 통해 케어팜을 이용할 수 있고, 지자체는 복지 예산으로 돌봄 비용을 케어팜에 지원해 운영을 돕는다.

네덜란드의 치유농업은 접근성이 유리한 도시 인접 지역에 빨리 도입됐다. 위트레흐트시(市)에는 도시농장인 ‘푸드포굿(food for good)’이 있다. 푸드포굿은 커뮤니티 가든이면서 케어팜으로, 공공 공원 부지에 조성됐다. 농장 이용자들은 건강한 먹거리를 직접 키우고 적당한 노동을 함으로써 삶의 에너지와 내면의 평안을 얻는다. 또한 사회적으로 고립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사회화되기도 한다.

한국형 치유농업은?

‘치유농업법’에 따르면, 치유농업은 “국민의 건강 회복·유지·증진을 위해 농업·농촌자원과 이와 관련한 활동을 통해 사회적 또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을 말한다. 한국형 치유농업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고 구체적인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치유농업에 활용되는 자원은 채소와 꽃 등 식물뿐 아니라 동물과 곤충, 농촌환경과 문화, 음식 등이다. 치유농업 서비스는 농작업과 이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으로 이뤄져 있으며 건강을 위한 예방, 치료, 재활을 돕는다. 치유농업 시설에는 치유농장, 치유마을, 치유농업기관이 있다.

치유농업 콘텐츠는 수요자 맞춤형으로 개발한다. 일반인 대상으로는 생애주기에 맞는 예방과 건강 유지를 위한 콘텐츠를 만든다. 즉, 아동과 청소년을 위해 정신기능의 정상 발달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성인과 노인에게는 스트레스, 고독감, 우울감 등의 감소와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에 문제가 있는 특수목적 대상자를 위한 콘텐츠도 개발한다.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 고위험군 성인을 대상으로 건강 지원을 하며, 자폐나 발달장애가 있는 아동에게는 인지기능과 사회성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치유농업 전문인력 ‘치유농업사’

치유농업사는 농업·보건·상담·심리에 전문성을 갖추고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전문인력이다. 2021년부터 운영한 치유농업사 국가자격시험에 응시하려면 대학 12개, 지방농촌진흥기관 3개 등 15개 양성기관에서 2급 142시간, 1급 124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1차 시험은 선택형, 2차 시험은 논술형·약술형 혼합이다.

치매 없는 노후 위한 치유농업 프로그램

농촌진흥청은 경도인지장애 노인을 대상으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인지 건강을 지키기 위한 프로그램은 인지자극(회상), 인지훈련(기억력), 인지재활(정원 소재와 공간 연계 활동)로 구성, 주 1회, 회당 2시간씩 10회기로 진행했다.

우선 대상자와 보호자가 16종의 식물과 더불어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텃밭 정원에 천일홍, 로즈마리, 애플민트, 유칼립투스, 라벤더 등의 식물을 심었다. 매 회기 시작 전, 인지자극을 위해 정원을 산책하면서 식물을 보고, 향을 맡고, 만지도록 했다. 실내로 들어와 말린 천일홍을 손으로 비벼 청각도 자극했다. 식물 사진 카드를 보고 식물 이름을 외우고 이름과 형태를 연결하여 기억력도 도왔다. 정원 전체가 나오는 큰 사진을 보면서 식물의 위치를 확인하는 퀴즈도 풀었다. 이런 인지훈련을 반복한 뒤 일상생활에서 식물을 키우는 농업활동으로 연결하여 인지재활을 도왔다. 그 결과 ‘치매 선별용 간이 정신 상태검사(MMSE-DS)’에서 기억력과 장소 지남력이 19.4% 증가했다. ‘주관적 기억감퇴 평가(SMCQ)’에서는 주관적 기억 장애 문제가 40.3% 감소했다. 우울증은 68.3% 줄어 정상 범위로 개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