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사각지대를 만드는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빈곤사회연대가 8월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광화문농성 기자간담회 및 삭발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빈곤사회연대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를 선정할 때 생계급여에 대해서는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생계급여를 신청해도 자식이나 배우자 등 부양의무자가 있을 경우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면 신청자 본인의 소득인정액만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여부가 결정된다.

보건복지부는 7월 14일 비상경제회의에서 ‘한국판 뉴딜’ 고용·사회안전망 가운데 ‘함께 잘 사는 포용적 사회안전망 강화’ 주요 과제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소득이 없어 생계가 어려운 어르신들이 생계급여를 신청해도 자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한 채 극빈한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린 어르신들은 9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대상에서 의료급여가 제외됐기 때문이다. 생계급여는 받더라도 여전히 병원은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기초생활보장제도란 무엇인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해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기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득과 재산을 합산한 소득인정액이 일정 기준 이하면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가 지급된다. 소득인정액에 따라 1~2가지 급여만 받을 수도 있고, 4가지 급여를 모두 중복해서 받을 수도 있다. 이밖에도 아기를 출산하면 1명당 60만원의 해산급여, 수급자가 사망했을 때 최대 75만원의 장제급여, 자활근로사업에 참여하면 일 최대 5만6110원의 자활급여도 받을 수 있다.

생계급여의 경우 올해 1인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52만7158원 이하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 예를 들어 소득이 10만원이라면, 소득인정액에서 소득을 뺀 42만7158원을 매달 받는다. 주거급여는 1인 가구 기준 소득인정액이 79만737원 이하면 지역별 기준임대료를 기준으로 임차료와 수선유지비를 받는다. 서울지역 1인 가구 기준임대료는 26만6000원, 소득이 70만원이라면 주거급여 대상자가 되고, 임대료가 30만원이라면 기준임대료 26만6000원을 전액 받는다.

의료급여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병원 진료 후 본인부담금 기준액 초과한 금액만큼 의료비로 지급된다. 교육급여는 1인 가구 기준 소득인정액이 87만8597원 이하면 초등학생의 경우 매달 20만6000원의 부교재비와 학용품비가 지급된다.

부양의무자기준이 왜 문제가 되는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소득인정액과 함께 부양의무자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지난 2000년 만들어진 제도다. 이에 따라 기초생활수급 신청 당시 1촌 직계혈족이나 배우자와 같은 부양의무자가 있다면 수급자에서 탈락한다.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는 경우에만 수급이 가능하다.

부양의무자 범위는 신청자의 부모,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대상이다. 배우자가 사망한 사위나 며느리, 계부, 계모는 부양의무자가 아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부양능력이 없어야 된다. 부양능력은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을 합산해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판정한다.

현재 부양의무자 기준은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 적용되는데,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게 이번 정부 조치의 핵심이다. 교육급여는 2015년 9월부터, 주거급여는 2018년 10월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대체로 고령의 노인들에게 적용되기 마련이다.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해도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면 수급자에서 탈락한다. 연락이 닿지 않거나 실제로 부양하지 않더라도 서류 상으로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있다면 예외 없이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폐단이 있기 때문에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약속했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모든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2018~2020년) 수립했다.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은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 추진을 비롯해 국민 최저선 수준의 보장, 자활일자리 확대를 통해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를 빈곤에서 탈출시킨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제1차 종합계획 수립 당시,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로 기초생활수급자가 2016년말 163만명(인구 대비 3.2%)에서 2020년 252만명(인구 대비 4.8%)로 늘고, 비수급 빈곤층은 93만명에서 2020년 최대 33만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2018년 기초생활수급자는 174만명으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올해 6월 기준 203만명으로, 목표치 대비 50만명이 부족하다.

7월 31일 오후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제60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열렸는데,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포함한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2023)이 결정됐다. 그리고, 8월 10일 국민 기본생활 보장을 위한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이 발표됐다.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2023년)은 주요 과제로 ‘빈곤사각지대 해소’와 ‘보장수준 강화’, ‘탈빈곤 지원’, ‘제도기반 내실화’가 언급됐다. 빈곤사각지대 해소는 2022년까지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보장제도 재산기준의 합리적 개선방안 마련, 차상위 의료지원과 긴급복지 확대 등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1촌 이내의 직계존비속 부양의무자가 있느냐,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과 부양가능성은 어떠냐의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그런데, 부양의무자 개념은 과거 대가족 중심 사회에서나 유효했던 가치관과 당위성이다. 하지만 핵가족 사회를 넘어 현재 10가구 중 3가구가 1인 가구인 실정에서는 부양의무자 개념조차 생소하다.

대가족 중심 사회의 가치관과 당위성을 구태의연하게 공공부조 수급요건에 반영해 당장 생계가 급해 최저생활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을 따돌리고 있는 셈이다. 특히,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과 부양가능성은 신청자 본인의 책임 영역이 아닌 데도 부양의무자의 소득이나 재산 관련 서류를 제출해 부양능력이 없음을 증명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번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서 2022년까지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기로 한 것은 상당은 진전이라는 평가다.

의료급여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돼야 한다

이번에 정부가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키로 한 조치에 대해 사회복지현장에서는 대환영이라는 평가와 함께 의료급여가 빠진 것에 대한 성토가 줄을 잇고 있다. 이번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결정과정에서 의료급여는 단 한마디 논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건강보험 보장률이 80%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보장률은 63%에 그치고 있다. 이는 의료비에 대한 본인부담이 OECD 평균보다 높다는 것이고,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부양의무자 기준 탓에 충분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9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존치하는 상황은 빈곤층에게 아프면 병원이 아니라 가족을 찾아가라고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023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계획이 제2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에 반드시 포함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